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단 편집) === 한국내 정치적 문제 고려 === 베트남 파병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세력이 미국의 지지를 획득해서 보장받기 위한 조치였다는 설이 있다. 1961년 11월, [[5.16 군사정변]] 직후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원한다면 병력을 월남에 파병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군이 월남에 파병되면 중국과 소련을 자극할 것이라 우려했기에 이를 거절했다. 대신 미국 정부는 경제원조를 약속하면서 사실상 군사정부를 승인하였다. 그리고 1963년 국민의 직접 투표로 치뤄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을 누르고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이 출범하였다. > '''파병하는 경우의 단점''' > (중략) > 5. 월남에 파병했을 때, 결과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 못하거나, 또는 한국군의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면, 국내정치상 문제가 초래될 것임. > ---- > '''월남파병문제'에서 고려되어야 할 문제점'' > 대통령비서실 문서, 보고번호 65, 제7호, 1964년 1월 6일 베트남 파병을 위한 장단점을 분석했을 때, 박정희는 월남에 파병 시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는 박정희 정부가 당시에 정치적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베트남 파병 정책을 실시했다는 주장이 다소 신뢰성이 떨어짐을 보여준다. 또한, 실제 파병이 이루어진 시점은 이미 박정희 정부가 선거를 통해서 출범한 이후이며 처음 파병당시 박정희 정부의 지지율은 70%에 달했기 때문에 정권의 정당성을 위한 파병이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파병 자체도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정말 안할 수도 있었지만, 진짜 확전된 베트남의 전황과 함께, 처음에 파병을 제안했다 거절한 [[케네디 암살|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린든 존슨이 확전을 결의하고 밀어붙인 만큼. 정권의 정당성이나 영속성이 아니라 박정희 본인이 미국에 빚을 지우기 위해 밀어붙였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실제로 수많은 기록에서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이나 지원단은 군사목적과 함께, 마치 해외 노동자처럼 전투수당이나 각종 현지 지급 수당을 한국에 송금하느라 휴가도 거의 못즐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즉 어느정도는 상술한 국가적 수익사업과 함께 정치적인 이익을 얻기위한 파병이었던 것. 게다가 파병 말기에 미국의 반전여론 물결에 영향을 받은 여론 때문에 오히려 정권의 지지율에 해가 되는데도 남베트남과 대한민국의 유사성과 '베트남전선은 휴전선의 연장' 이라는 명분 때문에 끝까지 철수하지 않았다. ~~물론 파병말기의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지지율은 [[독재|상관없는 정권]]이 되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